– 바울의 탁월함과 별개로, 우리와 같은 연약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의 무수한 도움을 필요로 했다.
# 딛3:12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 사람은 반드시 다른 이들의 도움과 수고와 지지가 필요하다. 아데마. 아데미 여신의 선물. 이방인으로서 이방 신을 믿다가 회심한 인물로 추정. 두기고. 에베소, 골로새 지방, 디모데에게 바울을 대신하여 편지를 보낸 사람. 바울의 소식을 잘 전달했던 복심.
– 디도를 보고 싶어하고 디도를 필요로 하는 바울의 모습. 사람을 너무 우상화시키거나, 반대로 그의 허물을 너무 크게 보지 말라.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자질, 많은 다름이 있어 보이지만,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나서 보면, 하나님이 공평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두가 바울일 수 없다. 교회는 그런 공동체가 아니다. 아데마, 두기고, 디도. 하나님은 우리의 은사에 꼭 맞는 사람이 되어 교회로 부르셨다. 세상은 사람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만, 교회는 하나라도 없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에게 가장 크고 완벽하고 기쁜 부르심인 줄 알고 감사하면서 살아간다. 우리 모두가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그만큼 교회가 비게 된다. 몸의 한 부분.
# 딛3:13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 새나와 아볼로. 디도에게 바울의 편지를 보내기 위해 그레데 섬으로 간 자들. 새나는 이방인. 이방인으로서 법률가였다가 온 자로 추정. 아볼로는 율법에 정통하고 설교에 탁월했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 파, 아볼로 파가 나올 만큼. 유명한 도서관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했다. 유명했던 자. 그레데 섬에서 선교를 같이 하다가 급히 다른 사역지로 가려 할 때, 그들의 필요를 채우라는 말.
– 당시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손님 대접이었다. 성도들이 거처하기 쉽지 않은 시대. 숙박과 음식 제공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시대였다. 부족함이 없이 하라는 말은, 그들의 필요를 잘 공급하라는 의미이다. 현대 사회, 너무 많이 개인주의화되어 있다. 형제, 부모 대접도 어려워진 시대. 성도가 시대를 거스른다는 말은 어떤 특정한 영역이 아니라, 여러 영역이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보고 채우는 것, 성도된 자세이다. 정부, 사회복지단체가 아무리 해도, 사람을 살리는 것은 성도가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정부와 제도가 하는 것을 통해선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교회가 해야 한다.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해야 사람들이 바뀐다. 우리가 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 기본적으로, 물질을 흘려보내고 나누기.
# 딛3: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 좋은 일을 힘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 부족함이 없게 하는 일. 열매를 많이 맺는 삶. 열매가 없는 삶. 죄와 어두움의 길. 열매 맺는 삶은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신다. 세상은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게 한다. 그러나 주님은 열매에 관심이 있으시다. 나의 재능과 능력으로 어떤 열매를 맺히며 살게 하시는지. 이웃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시대.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돕지 않는 것도 죄이다. 북한. 가까운 이웃. 성도가 섬겨야 한다.
#딛3:15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 성도의 교통과 사귐이 얼마나 중요한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기도로 사귈 수 있다. 단순한 ‘친함’이 아니다. 성도의 교통과 사귐이 있는가. 문안하고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고 그의 눈물과 기쁨의 원인이 뭔지 알고 싶은 것. 이런 교회됨이 너무 약해진다.
– 몸의 한부분처럼, 같이 웃고 같이 울어야 한다. 관심을 기울이고, 이야기 나누라. 바로 옆에 함께 예배드리는 동역자들에게. 그런 교회가 될 때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배운다. 그럴 때 세상의 갈급함을 교회가 채우게 된다.
– 처음. 디도로 시작되었던 은혜가 ‘무리’로 바뀌었다. 디도서 중간에도 은혜가 있다. 성도의 삶은 처음, 과정, 마침까지 은혜가 왕 노릇 한다. 성도가 은혜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면, 다 잃는 것이다. 은혜를 알아야 성도가 강건해진다. 은혜를 잃으면 우린 모든 평화를 잃는다. 믿음으로 살 용기, 힘이 회복된다. 빚진 심량을 가지고 누굴 섬기는데 지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상처받아도 성령의 치료를 받고 다시 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