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시(9시)에 십자가에 달리심. 많은 조롱과 멸시.
– (33) 육시(12시)-구시(15시). 가장 밝은 때에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 자연스럽지 않고 기적적인 속성의 어둠.
–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어버린 시기. 어둠은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상징한다. 징계와 진노. 출애굽 때 아홉 번째 재앙이 3시간의 어둠이었다. 어둠이 임하고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임한다. 누구에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 어둠의 대상이 예수님이었다. 어찌하여 날 버리셨습니까. 예수님이 크게 소리치셨다. 죄인들이 아닌 예수님께서. 가상칠언인데, 마가는 6개는 다 빼고, 이 말 하나만 넣었다. 이 말이 7개 전체를 요약한다는 듯이. 그 뿐 아니라 빌라도와의 대화 이후, 주님의 말은 여기까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큰 소리. 감정의 깊이가 담겨 있다.
– 죽음은 분리를 의미한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끊어짐. 몸과 영혼의 분리.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경험한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끊어짐. 기독교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다. 이 부르짖음에 들어있는 핵심.
– 시22:1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 예수님의 분리와 단절. 죽음. 지옥 경험.
–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죄이다. 죄 때문에 분리가 일어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것을 경험하셨다. 예수님은 무슨 죄가 있을까. 예수님은 죄가 없다. 저와 사람들의 모든 죄가 옮겨져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과 심판을 받으셨다.
–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이라 부른다. 하나님과 끊어졌으므로.
– 이 잔을 옮겨 주세요.. 목전에 있는 죽음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담대하게 주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 예수님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일정한 정도의 고통은 되었겠지만).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과 교통을 빼앗기고 버림받는 것이 아프고 두려웠다.
– 기독교의 죄 용서는 안 본 것 처럼 덮어놓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형벌과 심판을 예수님이 담당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용서받았다.
– (38)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하나님이 찢으셨다.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가던 문이 모두에게 열렸다. 특정한 소수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진실한 자에게.
– 예수의 피로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 (히).
– (39) 백부장의 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모든 과정을 통제했던 책임자로 추론된다. 찢어진 휘장으로 이방인 백부장이 들어갔다. 그 전에 강도들이 들어갔다.
–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의 시작. 그리고 15장에서 이방인의 입을 빌어 이 말을 다시 한다. 예수를 알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요한복음의 목적.
– 나는 주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고 인정하고 있는가? 그 믿음과 신앙이 회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