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407주일] 4부예배 고전15:4-11,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들

– 게바. 베드로. 행1-9 바울 등장 전까지 사도행전의 주인공. 바울 등장 후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온다. 가장 대표적인 사도. 베드로는 실패한 사람이다. 주님을 세 번이나 부정한다. 한 번 부정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지만, 세 번은, 그것도 세 번째에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정한 것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주님이 세 번 물으시며 그를 회복시킨다. 첫번째 질문.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정해도, 나는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베드로의 다짐에 대한 질문. 그의 마음 중심에 있는 자기에 대한 관점. 자기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예수님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주님을 향한 자신의 알량한 마음을 기초로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세상은 끝없이 나 자신을 보도록 한다. 주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 주님의 공로와 우릴 향한 대속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 때, 그것이 기준이 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할 준비가 된다. 사람들은 자꾸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더 악한 자이다. 내 안에는 신뢰할 만한 거리가 전혀 없다. 베드로의 대답. 주님 제가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친구들과의 사랑에 쓰는 표현으로. 자신에게 기준을 둘 수 없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주님과 사랑하는 관계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포기할 수 없습니다. 어떤 변명도, 어떤 책임전가도 없다. 사람들이 얼마나 변명과 책임전가가 많은가. 베드로는 자기의 실패에 대한 책임, 허물, 어리석음이 선명히 드러났을 때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내려놓는다. 주님이 그런 그에게 벌을 주시나?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지도자의 자리로 두신다. 이렇게 연약한 사람이 어떻게 지도자가 되는가? 세상에선 잘하고 또 잘해야 지도자가 된다. 성경은 약함이 강함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실패를 완전한 사랑으로 받아내신 주님을 아는 사람이 지도자이다. 자신의 약함을 모르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아니다. 한계와 약함이 뭔질 알고 있음에도 은혜가 자길 회복시킨다는 것을 아는 자. 잘하는 사람들의 넘어짐을 조롱하지 않는 자.

– 야고보. 예수님의 동생. 유다서를 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살아 생전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행1장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의 형제들이 같이 기도하는데, 야고보와 유다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라 예상된다. 갈라디아서에 야고보는 기둥같이 여김을 받는다. 게바와 요한과 함께 나오는데 야고보가 제일 앞에 나온다. 야고보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의장.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가장 대표적인 인물. 예수 부활의 산 증인. 야고보서를 쓰면서, 그는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 불렀다. 예수님의 동생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가장 귀하다. 동생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 나의 세상살이의 존재 가치라고 한다. 다 왕 되려고 하는 이 세상에서.

–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도마. 자기의 확신을 따라 행동하는 회의주의자 도마. 예수님을 위하여 죽으러 가자고 말하는 충직한 제자. 창의적이진 않다. 상상력이 부족하다. 예수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도마는 심드렁했다. 직접 만져보기 전, 자기 확신이 들기 전까진 믿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그 때 나온 위대한 고백. 나의 주님이시여,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도마는 무너진다. 자기 확신, 자기 방법. 주님이 계시지 않았는데 자신이 한 말을 예수님이 기억하셨다.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고, 다시 한 번 사랑이 불일듯 일어났다. 내가 스스로 확신할때까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오지만, 난 아직 성도라 할 수 없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보지 못하고 믿는 자기 복되다고 하신 말씀. 자기 확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굴복시키고 은혜의 말씀을 따라 믿는 것이 순종이고 복종이다.

– 바울.
(고전15:8-9)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 예수가 틀렸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옳다고 여겼다. 다메섹. 네가 어찌하여 날 핍박하느냐. 주님을 위한다고 생각했는데 주님을 대적하고 원수처럼 여겼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활의 대표적인 증인. 많은 교회를 세우고 선교여행도 많이 했고 수없는 수고를 했지만, 자기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부른다.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흠과 결격 사유가 분명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 보석같이, 영화롭게 빛나는 삶을 살면서 드러났다.

–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은혜’의 세 번 반복. 나 같은 것을 살리고 당신의 일꾼으로 삼으셨다. 이전까지 바울의 삶엔 은혜가 없었다. 바울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종교심과 도덕심이 높고 계율과 율법을 몸부림치면서 지키는 자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은혜가 보였다. 교회 안의 성도들이 너무 거칠고 강포하다. 겸손하고 무너져있는 내면을 가진다. 누군가를 충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잘 믿는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교만한지. 자기 확신에 붙들려서 자기가 원하는대로 살면서 그게 어떻게 신앙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은혜밖에 없다. 은혜에 대한 감각은 내가 기독교인인가, 아닌가를 정하는 기준이 된다. 내 삶에 은혜에 대한 고백이 있는가.답을 맞히는 고백이 아니라, 무수한 일을 했어도 여전히 은혜라고 이야기하는. 하나님이 날 더 특별히 사랑하신다? 그런 고백은 기독교엔 없다. 이렇게 흠결이 많은 사람들을 주님은 부활의 권능으로 부르셨다. 우리의 무수한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부활이 모든 것을 바꾸어낸다. 하나님의 사람을 빚어낸다. 이것이 주님의 영광이다. 도마 개인의 질고와 고민을 다 아시고, 그에게 오셔서 응답하시고 채워주시는 경험. 다른 사람을 흉내낼 이유가 없다. 나답게 빚어진다. 주님처럼, 주님의 아름다움처럼. 주님이 우리의 모든 기준이다. 사람이 모델이 아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다. 좌절하고 낙심했던 경험.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신 주님의 권세. 내가 안된다고 할 근거가 전혀 없다. 징크스. 절대 지지 말라. 일어나서 믿음의 경주를 신실하게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