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이뤄지길 원하시는 것, 자유. 죄로 말미암는 형벌과 진노로부터의 자유. 하나님의 호감을 사려는 어리석음으로부터의 자유. 나를 꾸미려는 마음으로부터의 자유. 율법의 통치와 지배로부터의 자유. 얻은 자유를 다시 빼앗기고 종살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시도들이 안팎으로 계속 이뤄진다. 예수를 믿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할례와 안식일, 정결예식 등 추가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나에겐 뭔가를 하고 기여해야 내가 떳떳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율법주의적 경향이 있는데, 이걸 통해 거저 받는 은혜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죄된 본성이 만들어내는 기여를 통한 구원이 옳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만족이 일어나고, 종교성이 충족되고, 이것이 나의 신앙생활을 왜곡시킨다. 성령의 열매가 아닌, 나의 열매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다.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 할례를 받거나 무언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다. 성도들이 자라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신앙생활을 하며 율법주의적이 된다. “이 정도는 해야지.” 그것은 세상 종교가 하는 일이다. 무자격한 나.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는 기본이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예수를 바르게 믿는 성도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공로나 자격 등 뭔가를 해서 떳떳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공로를 기대하고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 지금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나중에도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라는 소망과 믿음을 가진다. 그 믿음이 바깥으로 향하여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신앙생활을 잘못하면 끊임없이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내가 더 나아졌나. 쓸만한 사람이 되었나. 내가 안정과 평안함을 느끼는가. 그러나 바른 신앙은 날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리로 데려간다.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 균형이 아닌, 둘 중 하나로 생각한다. 자유를 방종으로 바꾼다.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할거야!” 변질시킨다. 나의 본성 안에 육체의 기회가 들어있다. 죄로 인해 타락한 본성과 죄된 경향. 끝이 없는 자기지향적 힘. 자아가 무너진 신앙인이 없다. ‘나는 잘 믿지.’ 또, 정욕과 향락에 쉽게 걸려 넘어지고 추구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육체의 기회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의 정욕과 탐욕을 충족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 사랑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선택을 하게 하기 위해 기꺼이 종이 될 자유를 주셨다. 얼마든지 안할 자유가 있는데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 상대를 소유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고, 자유자로서 사랑을 선택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영화롭게 하고 존중하고 나를 희생하고 나를 깨뜨리는 모습.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자유자의 모습이다.
– 많은 왜곡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세상.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상대를 위해 스스로 종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은 과시가 아니다. 평판의 종, 나 자신의 종이 아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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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두 가지 반대적인 경우에 대한 바울의 대안은 동일하다. 사랑.
– 율법주의가 추구하는 것. 사랑이다. 바른 사랑으로 나아가면 율법이 성취된다(!). 뭔가를 하고 하지 않는 것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율법이 우리에게 정말 원했던, 순종하라 했던 모습이 곧 사랑이다.
–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 주장을 내려놓지 않는다. 이 길은 피차 망하는 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유자로서 주님의 사랑을 배우고 다른 이를 사랑하며 종되는 것만이, 이 세상을 회복시키고 치유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성령의 열매에 처음으로 나오는 사랑. 바른 믿음이 나오는 사랑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