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505주일] 1부예배 갈5:19-23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희락. 기쁨.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표지 중 하나. 하나님이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실 때 나타나는 결과 중 하나이다.

– 유쾌하거나 만족스런 상태 정도가 아니라, 뿌리가 깊은 심오한 기쁨이 일상을 관통하는 것이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기쁨을 가질까? 4가지 정도.

–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아는 기쁨. 하나님의 아름다움, 존귀함을 깨닫게 되면서 오는 기쁨이다. 이 땅을 사는 존재 목적, 하나님을 영원토록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성도의 뿌리.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시고 우리 삶의 참 주인됨을 아는 데서 오는 기쁨, 자유, 평안.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사는 힘이다. 어떤 삶의 자리에서도 빼앗길 수 없는 삶의 기쁨이다. 주님이 계신 곳에 기쁨이 있다. 복음을 아는 지식도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준다. 복음은 주님이 넘치는 사랑과 풍성한 은혜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보여준다. 공로, 조건이 없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죄를 향한 완전한 승리가 되었다. 이 복음으로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

– 우리는 한번 받은 기쁨을 계속 누릴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배를 주셨다. 절기를 주셨다. 본성이 죄인이라, 세상의 이야기에 솔깃하고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은 뿌리내리기가 어렵다. 예배라는 구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보고 하나님의 관점에 따라 교정해나간다. 우릴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함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는 세상에 따라가지 않는다. 혼인 잔치에 참여한다. 잃었던 기쁨을 다시 찾는다. 빼앗기지 않는다. 예배가 얼마나 미련한 구조인가. 그러나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이 땅에서 잘 되어야 행복할 것같은 세상의 논리에 굴복되지 않는다.

– 성도의 사귐과 교제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이다. 교제가 없다면 신앙생활의 60%를 빼앗긴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내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의 테두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우리의 이기적인 자아를 뛰어넘고 말씀을 통한 새로운 가족과의 교제는 신앙생활의 핵심 중 하나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는 중에 주신 가장 큰 축복중 하나는 ‘사람’이다. 나와 관계없는 무수한 사람들에게까지 관심이 커지면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희락과 감격과 기쁨이 있는지 모른다. 귀한 지체들을 만나서 말이 통하고, 함께 기뻐하고, 질고와 아픔을 함께 감당하는 믿음의 지체들이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만날 때 성령님이 임재하신다. 성령님의 도우심. 선하고 상상할 수 없는 지혜로 서로를 복되게 한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때가 되면 없어지는 것이지만, 성도의 교제는 영원토록 남는다. 하늘에까지 이어진다. 이 세상의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 귀한 믿음의 동지들. 함께 의지하고 지지하는 지체들이다.

–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많이 다친다. 좌절하고 낙심하고 두려워하고 염려하며 우리의 기쁨을 빼앗긴다. 기억하라. 날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 우리의 구원을 완전케 하신다. 만물과 자연에까지 하나님께 감격하고 감사하는 노래가 넘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이 있는 곳에 가는 것이 끝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당신의 장막에서 우리의 눈물과 질고를 씻어주신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의 세 가지 특징.

첫째. 정결하고 거룩한 기쁨. 모세, 시내산, 금송아지. 성경의 희락은 육체적인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다. 거룩하고 정결하고 자녀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은 기쁨이다. 둘째, 기뻐하고 즐거워하되, 개인으로 머물러있지 않아야 한다. 함께, 공동체적인 속성이 있다. 세상은 일부 사람들만 기뻐하게 한다. 남들이 못 받는 대접을 받을 때 기뻐한다. 세상이 생각하는 성공. 그렇게 기뻐하면 안된다. 성경은 유대인이 기쁨을 나누는 절기에, 노예도 참여하도록 권한다. 레위인, 고아와 나그네, 객들이 함께 누리도록 초대한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가.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교회가 함께 하는 기쁨. 셋째. 심오함. 환경이 빼앗아가는 기쁨이 아니다. 항상 기뻐하라. 우린 왜 이렇게 기쁨을 잘 빼앗기는가. 그리스도의 사건, 이 위대한 복음의 기쁨과 감격이 우리의 것임을 알라.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순간에도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신뢰하고 의지하라. 성령께서 끝없이 우릴 붙들면서 가능하게 하는 기쁨과 희락이 넘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