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렘37:1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음이었더라 2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3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4 그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 시드기야 왕 역시 앞선 왕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신하들과 백성들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레미야를 찾아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요청합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의 뜻에 반하는 예언만 하는 자인데, 그를 찾는 왕의 상황이 얼마나 위태롭고 그의 마음이 얼마나 갈급한지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그런 갈급함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들의 뜻을 따라 역사하실 하나님은 필요합니다. 이 뻔뻔한 모습이 제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신경쓰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절 도와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세상에 몰두해 있는데, 하나님은 다 이해해 주실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놓아 버립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절규를 전혀 듣지 못하고, 제가 할 말만 하고 하나님의 응답이 왜 없을까 궁금해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 저의 온 힘과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지금 제 삶에서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 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6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8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 조짐이 좋습니다. 유다를 멸망시키려던 원수가 바로의 군대로 인해 떠나갑니다. 상황이 유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꽉 막혀 있었던 어두운 상황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판단의 근거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사람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이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상황 앞에서 나의 판단에 대한 기쁨과 확신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씀은 더 들리지 않고 재앙의 길로 가기가 너무 쉽습니다.

– 하나님은 다시 바벨론은 돌아올 것이고, 바벨론 군대가 유다에게 대패하여 부상자만 남는 일이 생긴다 해도 유다는 그들로 인해 멸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그 판단을 ‘스스로 속인다’고 표현하십니다. 유다가 바벨론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들의 왜곡된 마음과 생각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사실이고 진실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스스로를 속이는 일입니다. 저 자신이 죄로 인해 왜곡되었기 때문에, 제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당연히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에 제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틀리다는 것을 경험하는데, 어떻게 저의 생각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이 땅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진실에 기대어 모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저를 향한 말씀이 제게 절대적인 기준이 됩니다. 설령 그 말씀의 내용이 저를 향한 저주와 재앙이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나라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재앙의 말씀을 전했던 예레미야가 신뢰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재앙을 겪게 하신다 할지라도 결국엔 유다를 다시 회복시키시고 구원해 내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 상태에서 어떤 모양의 삶을 살아도 괜찮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