딛2:6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10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 디도서를 통해 계속 바른 교훈과 그에 합당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이가 젊은 여자 성도들에게 필요한 합당한 삶이 어떤 것인지 기억하자.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라.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 공동체인지 꼭 기억하고, 가정을 다른 어떤 것들보다 가볍게 여기지 말고, 가정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잘 지켜내고 살려내야 한다.
오늘은 젊은 남자 성도들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 딛2:6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
이와 같이. 앞에서와 같이. 젊은 여자 성도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아내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똑같이 하고 있다. 거기에 한 가지를 강조했다. 신중하라. 젊은 남자 성도들의 보편적인 약점은 바깥에서 오는 충동에 의해 성급하고 경솔히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경험이 쌓이고 삶의 다양한 경험들을 거치고 나면 외부에서 충격이 왔을 때 상대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가 있는데, 젋을 때는 잘 안 된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답게, 바른 교훈과 생명에 이르는 진리를 믿고 있는 성도들답게, 우리는 젊은 세대가 가진 한계를 일정한 정도로 극복해내면서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 결정들을 내릴 때 균형잡힌 사유를 가지고 건강하게, 충동적이지 않게 결정해야 하며, 젊은 남자들을 그렇게 권면해야 한다. 특히 젋은 형제들은 아내의 말을 귀담아듣고, 절대 성격을 폭발시키지 않고 무례하게 하지 말라. 힘을 다해 귀기울여야 훈련이 되고 마음이 연단된다. 그 경륜이 더해져가면서 하나님이 기대하는 성도다운 합당한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 딛2: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지도자인 디도에게는 본을 보이라 한다. 지도자가 너무 중요하다. 지도자들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에게는 일반인보다 더 높은 기준이 요구되는 것이 당연하다. 더 감당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을 양육해내는 데에 지도자는 어떤 본이 되어야 하나? 두 가지 중요한 일. 선한 일에 본을 보이고, 가르치는 데에 본이 되어야 한다.
지금 교회의 중요한 부르심 중 하나는, 지도자가 건강한 사람을 잘 길러내어, 좋은 목회자들을 길러 내고 헌신된 평신도들을 길러 내서 조국 교회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제대로 길러내야 한다. 조국 교회 구석구석에 건강한 교회들이 세워져야 한다. 우리의 역할 중 하나이다. 이 일은 바른 교훈과 바른 행실의 본이 합쳐져서 가르쳐져야 가능하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조화를 가져야 한다.
첫째, 선한 일에 본이 되어라.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본. 좋은 본을 보이라. 선한 일이란, 다른 사람에게 덕을 끼치고 유익을 끼치는 것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즐겨 하고 그런 삶이 습관이 되도록 하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선한 일에 본이 된다. 교회를 사랑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성도들. 그 일이 약해지지 않도록.. 선배들 때는 이랬는데.. 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나도 사람인데.. 이렇게 합리화하지 말고 살아내라. 성경이 요구하는 기준을 따라.
둘째. 바른 교훈을 가르침으로 사람을 길러 내라.
바른 교훈의 특징 세 가지.
– 동기. 부패하지 않아야 한다. 더러운 일을 위해 하지 않고, 그 동기가 회중들의 영적인 변화와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진리와 복음의 부요를 제대로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부패하지 않은 순전한 진리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 이 진리를 전할 때의 방법. 단정하게. 진정성이 있는 진지함, 경외함이 묻어 있는 경건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고 전해야 한다. 위대하고 귀한 진리를 너무 가볍게 다루면 사람들은 그 진리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자꾸 잊게 된다. 다만, 지나친 긴장을 주는 것이나 침울함이어서는 안된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위대한 선물 중 하나는 기쁨과 행복이기 때문이다. 바른 진리가 우리의 내면에서 깨달아질 때, 그 희락과 감격이 우리의 영혼 속에 회복되는 것이다. 진지한 것이 지루한 것은 아니다. 영혼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이 일이 정말 귀하다고 깨닫게 된다.
– 내용. 순전하여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교회는 2천년 동안 시대와 지역이 달라도 동일하게 고백하는 진리가 있었다. 그 진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거나 하지 않고, 그 귀한 진리의 순전함이 그대로 녹아 있는, 그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순수하고 순전한 진리를 가르쳐야 하는, 이것이 바른 교훈의 내용의 순전함이다. 이 바른 진리,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의 진리가 우리에게 올 때 제일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은혜’이다. 그래서 우리가 바른 교훈을 들을 때, 끝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가,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삶과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이 얼마나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연장선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들이 풍성하게 경험되고 누려지도록, 그 내용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부요와 풍성이 얼마나 놀라운가 하는 내용을 깨닫도록, 그런 내용이 묻어나는 것이 바른 교훈의 특징이다. 바른 진리는 우리가 모태로부터 받은 생명만이 아니라, 예수가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것을 영생이라고 부른다. 그 영생이 얼마나 참되고 풍성한가를 깨닫도록, 알도록 도와야 한다.
동기가 순수하고 내용이 건전하고 전하는 자세와 방법이 그 메시지에 합당한 단정한 모양으로 전해져야 바른 교훈이 된다. 왜 이렇게 해야 하나? 왜 이렇게 선한 삶의 본이 되어야 하고 바른 교훈을 전해야 하나?
딛2:8 …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성도로 세상을 살면 우리는 우릴 감출 수 없다. 우리는 등잔대 위에 있는 등잔이고, 산 위에 있는 동네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안 믿는 사람과 다르고 구별되기 때문에, 우린 어딜 가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늘 주목을 받다가 대적하는 자들과 대적하거나 핍박을 받거나, 대적을 하다가 깨달아서 함께 주님을 믿게 되는 사람들,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 일부는 대적하고 일부는 돌아오면서 끊임없는 고난과 핍박을, 교회는 반복해서 겪어 온다. 그런데 우리의 가르침이 다르고, 우리의 삶이 선한 본이 되어서 그렇게 대적하는 사람들이 대적을 그만둘 뿐 아니라 부끄러워하도록, 우리를 본받게 살도록, 우리의 삶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조국 교회의 성도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과 복이 얼마나 넘쳐나고 부요하고, 그 일이 우리의 일상의 삶에도 얼마나 구체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되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나님 앞에 쏟아 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와 선물에 우리가 너무 부적절한 허물 많고 연약하고 죄인인 죄에 대한 고백이, 충분히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고백하고 그 은혜를 다 고백하고도 모자른데, 그 은혜를 생각할수록 우리의 삶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격 없는 것이 깨달아져서 우리의 죄를 더 깊이 보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토설하는, 그런 기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너무나 많은 기도가 먼저 회개로 달려가는, 그런 기도 말고, 하나님을 향한 무수한 감사와 고백들이 묻어나고, 그 다음에 무수한 고백과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정말 은혜 때문에 부족한 우리에게 거져 주셨는가 깨달아지고, 그럴 수록 우리의 무가치함이 더 많이 깨달아지고 고백되는 그런 은혜가 있을 때, 세상이 우리를 보면서 대적하기를 부끄러워하게 되는 은혜가 있을 것이다.
– 이 시대의 종은 모든 경제활동의 주체들이다. 로마 시대의 모든 노역과 고역은 종들이 주되게 했던 일들이다. 오늘 우리의 개념으로는 피고용인이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합당한 피고용인의 삶은 어떤 것인가. 성도로서의 직업 윤리에 대해 생각한다. 건강한 직업 윤리가 잘 세워질 기회가 없었던 조국 사회. 식민 지배, 내전 등으로..
딛2: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10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 순종하여 기쁘게 하라. 순종이 마치 열등과 하등의 특징처럼 여겨지는 시대.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님께 순종하고 상전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친다. 순종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셔서 나밖에 없고 내가 제일 중요했던 삶을 넘어서서, 나에게 정말 참 주인이 생긴 중요한 표시가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이고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본주의 사회.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가르치면서도 돈이 많은 사람들을 건강하게 존경하는 것이 아니고, 좋지 않은 파괴적인 시선으로 본다. 종들이 주인이 일을 시킬 때 억지로, 하기 싫은데 시키니까 하는 삶을 반복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의 표시를 그 주인을 향해서 공경하는 맘을 담아 복종하고 그런 마음이 전달됨으로 기쁘게 하는 방식으로 이 시대를 살라고 가르친다. 사람들을 공경하지 않고 조금만 수틀리면 나쁜 말을 쏟아내는 험한 시대. 이 험한 세상에서 선을 그어 놓고 하나님 때문에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고용주를 기쁘게 하는, 우리를 고용하는 고용주를, 그냥 월급을 주는 관계 안에서 대하지 말고,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분인 줄 신뢰하면서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우리가 일하는 것을 볼 때 흡족하도록, 기쁘게 하라는 것이다.
– 말을, 앞에선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처럼 말하다가 뒤에서는 나쁘게 말하지 말라. 우린 하나님 눈 앞에서 사는 사람이다. 안 믿는 사람들처럼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든지 안 보든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기준이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 앞에서 하지 못하는 말을 뒤에서도 하지 못하는, 합당한 성도의 모습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신앙을 담아내도록, 우리의 말이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표시가 드러나도록, 나쁜 말, 불평하는 말, 저주하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종들에게 말이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 훔치지 말라. 주인의 것인데 내 것인 것처럼, 내가 땀흘려 일한 건데 주인이 너무 많이 가져간다고 생각하고 슬쩍해도 되는 것처럼 자기를 정당화시키며 주인의 소유를 탐하거나 도둑질해선 안된다. 근무시간에 힘써서 고용주를 잘 섬기고, 꾀를 부리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적당히 시간을 때우며 사는 것은 우리가 사는 방식이 아니다. 종교개혁 직후 독일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 면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일상을 살았다. 그 흐름이 신앙에서, 신실한 성도로부터 민족성으로 나타났다. 내 가족밖에 모르는 조국 땅에, 우리에게도 이런 건강한 직업 윤리가 우릴 통해 흘러가야 한다.
– 모든 신실함을 나타내기. 절대 눈가림만 해서 살지 말고, 충성스럽게 섬겨서 하나 두개가 쌓이니 저 사람은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도록 신뢰할 만한 삶을 사는 것이 성도가 사는 합당한 방식이다. 우리가 사람들을 대할 때,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안다. 이 자본주의 시대에, 약아서 손해보지 않고 제 것을 잘 챙기는 것이 지혜롭다고 믿는 이 미련한 시대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런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도록 촉구해야 한다. 이 나라, 자기 이익에 너무 민감한 어리석음을 너무 오랫동안 반복해 왔다. 이제 끊어내야 할 때이다. 이제 우리가 믿는 바에 합당하게 사는 그런 삶이 드러나야 할 때이다.
종들이 이렇게 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딛2:10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1-10절의 각 연령에 맞는 성도들의 합당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말했고 그 이유들이 나오는데, 그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님의 진리의 바른 교훈이다. 종들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기 위함이다. 종이 제대로 성도답게 살아줄 때 하나님의 교훈이 빛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세상은 종에 주목하지 않는다. 왕과 영웅, 호걸, 장군과 성공한 사람과 능력있는 사람에게만 주목하는데, 성경은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따라 살기 시작하자, 하나님의 진리가 빛나게 되는 영광이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나 하나가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빛난다는 말은 보석함에 들어있던 보석이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진열대에 진열되어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드러내고 보인다는 의미이다. 종 하나가 그렇게 살기 시작하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하나님의 교훈과 진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보석같은 아름다움과 가치로움을 드러내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하는 것, 그게 합당하게 성도들이 살아가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일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내뱉는 말 한마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기본을 제대로 지키며 사는 행동 하나, 우리가 소비를 하고 직장을 선택하는 사사로워 보이는 일들에 성도다움이 묻어날 때, 생명의 말씀이 우리가 믿고 우리를 우리되게 하는 복음과 하나님의 진리가 보석이 진열되어 가치로움과 아름다움이 그대로 드러나서 빛나게 되는 영광이 있다.
– 성도다움에 합당하다고 할 때, 여러 가지 중 한 가지 초점을 맞추면, 사랑일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생명을 생명답게 만드는 핵심 중 하나는 사랑인데, 이 사랑은 세상이 말하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들 하나님이 자기를 다 비워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도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다 이 땅에 내어 주셨다고 말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배운다.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내어 주고 가장 소중한 것을 깨뜨리고 희생하는 사랑의 핵심을 배운다. 그렇게 자기를 비우고 내어줄 때 비로소 자신을 얻게 된다. 세상은 자기를 주장해야 뭔가를 얻는다고 말하는데, 성경은 자기를 내어주고 비울 때 비로소 참된 자기가 되고, 바른 사랑과 합당한 삶을 행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좁게는 가정에서, 넓게는 교회와 일터에서 사람을 사랑하되 자기를 비워서 하는 사랑, 자기를 내어 주고 희생해서 하는 사랑, 그럼에도 희안하게 잃는 것이 아닌 얻게 되는 그런 사랑. 그래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성도의 삶에 합당한 삶이 살아져서, 너무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있는 이 조국 사회에 건강한 하나님의 진리가 다시 세워지는 영광이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