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128주일] 3부예배 딛3:1-5 나타내신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

– 왜 나만 그렇게 살아야 하나? 손해보면서. 당장은 손해보고 돌아가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시고 ‘내가 봤다’라고 하실 때가 있다. 또,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과 같이, 나도 그렇게 살았다.

# 딛3: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 어리석다. 하나님을 모른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똑똑하다 해도. 구원의 진리를 모른다. 내가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구원의 복음이 필요한지 모른다. 사람에 대한 깊은 긍휼 없이는 옳은 말이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 어리석다. 복종, 순종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압박과 불합리함 속에서도 하나님께 복종하고 순종한다. 똑똑한 것 같지만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속는다. 악한 자와 마귀에게 속는다. 세상의 가치를 넘지 못한다. 따라갈 뿐이고 이끌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속는다. 세상의 가치를 따라 날 본다. 어리석게도, 그래도 조금 쓸만하다고 여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속아서 자기 자신의 종된 삶을 산다. 자유가 뭔지 모른다. 주님의 종, 지체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 악독. 사람을 향한 악의. 투기. 다른 이의 소유와 재능을 시기하는 것. 내 것으로 삼고 싶어하는 욕망. 세상은 보편적이지 않은 특수한 예를 대표로 제시한다. 서로를 역겨운 대상으로 본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나와 상대방이 연결되어 있다고 여긴다. 나의 기쁨이 그의 기쁨이고, 그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

# 닫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 나 말고, 바깥에서 나타났다.
우린 모두 다른 능력치를 가졌다. 세상은 그것으로 키재기를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사람에 대해 존중하신다. 능력치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을 차별할 이유가 없다. 능력치가 높으면 더 많이 섬기고 봉사하고 다른 이들을 복되게 해야 한다.

–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으로 간섭해 들어오신다. 지혜가 열리고 하나님이 인정된다. 세상의 이치가 깨달아진다. 사람과 세상을 보는 바른 지혜가 밀려들어온다. 더 이상 과거처럼 살지 못한다.

– 사람의 능력치에 끝없이 가치를 부여하는 세상. 사실은, 아무것도 우릴 자랑할 것이 없다. 주님이 주신 은혜 때문에 진실한 변화가 열린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들을 윤택하게 하려 한다.

– 하나님의 자비. 헤세드. 신실한 책임 있는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셨다. 우리는 사랑스럽거나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요소는 없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내겐 사랑받을 만한 요소가 전혀 없다. 가족 안에서 사랑을 배우는 것처럼. 조건에 근거하지 않는 사랑. 귀하게 여기고 끝까지 견디며 제대로 된 사랑을 배운다. 하나님이 자격 없는 우릴 사랑하시고 찾아오셔서 간섭하신다. 자비를 드러내시고 우리 사랑하심을 드러내셨다. 그 결과, 3절의 내용과 같이 살았던 우리를 구원하셨다.

#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구원과 아무 관계가 없다면,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생명이 주는 다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 구원은 철저히, 내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로 이뤄진 것이다. 자비와 사랑. 내 안에는 대안이 없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 받아서 참여하는 자마다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 지금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때이다. 때가 차면, 은혜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때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