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5: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 귀신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은 경배와 찬양의 의미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주 잘 알지만, 예수님은 자기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존재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보면서 귀신들이 절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크게 외치는 것도,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을 불신하게 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계략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님을 공격할 거리를 얻기도 했고요. 귀신들이 그들을 스스로 마음껏 드러내놓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귀신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요. 귀신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극히 두려워하고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여 그저 떠나기만을 간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있으니, 곧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사탄과 귀신들을 물리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묶여 있던 저희를 자유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었고, 당신의 죽음을 통해 그것을 이루셨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도 여전히 악한 영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긴 전쟁입니다. 이 사실을 귀신들도 압니다. 그들의 마지막 발악에 동요하거나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은밀히, 혹은 드러내며 사람들을 이끌고 유혹하는 사탄의 역사들이, 예수님의 승리하심으로 훼파되고 무너지기를 기도합니다.

# 막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 예수님께 약하다고 해서, 그 귀신들이 저보다 약한 것은 아닙니다. 귀신은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다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2천 마리의 돼지 떼를 조종하여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습니다. 제가 맞서서 버티거나 싸워서 이겨볼 만한 상대가 결코 아닙니다. 제가 강한 것이 아니라, 제 안에 계신 예수님이 강한 것이고, 제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계신 예수님이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굳이 저를 통해 일하시고, 영적 전쟁을 치르게 하시고, 악한 영과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주님이 이 과정들을 통해 제게 알려주시고 싶은 것이 있고, 또 저를 통해 예수님을 모르는 다른 영혼들을 위로하고 인도하려 하십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이미 이기신 전쟁의 흔적을 따라가며, 주님이 행하시고 승리하신 모든 일들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 막5: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 거라사 지방 주민들은 이 일을 보고 들은 후, 두려워했습니다. 자기 동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놀랐고, 이 놀라움이 부정적인 쪽으로 표현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로부터 떠나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지방에는 귀신들린 자 같은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가 딱히 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니까 귀신들린 자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지만, 그 대가로 돼지 2천 마리를 잃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마을의 그런 문제를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이런 막대한 재산 피해가 난다면, 그 피해는 그들의 직접적인 피해가 됩니다.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한 영혼보다는, 마을 전체의 경제적인 보전이 더 중요합니다. 이들의 말과 생각이 제게 설득력있게 들린다는 데에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 귀신 들렸던 자는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었는데, 예수님이 거절하시면서 다른 일을 맡기십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들에게 알리라’고요. 주님이 거라사 지방에 가서 그를 귀신으로부터 건지신 이유는 ‘불쌍히 여겨서’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하나님과 함께 기쁨으로 살아가야 할 영혼이,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귀신에게 지배받으며 사는 것이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제가 복음을 들어야 할 영혼들에게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네가 높은 곳에 있고, 낮은 곳에 있는 대상들을 보며 동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누리고 있는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의 충만함을 누리지 못하는 영혼을 향한 안타까움이며, 예수님이 귀신 들렸던 자에게 향했던 그 사랑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를 속박하고 지배하고 있던 악한 영과 세상의 관점으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그 한 영혼을 만나길 소망합니다. 그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게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저를 통해 예수님이 그 넓은 마음으로 그를 넉넉히 받아주시고, 제가 예수님의 그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 귀신 들렸던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집으로 돌아갔고, 예수님이 자기에게 하신 일을 가족들 뿐 아니라 그가 있는 지역에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물리적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아닙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다녔던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이런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외면하고 버렸습니다. 귀신 들렸던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 거기에 더하여 많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부끄러운 과거를 아는 사람이 많을 수록, 그가 전하는 복음은 더 큰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구원받은 경험은 흔들림없는 확신 가운데 진실함으로,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거고요. 저의 연약함들도 이렇게 사용되길 기도합니다. 제가 구원받은 기쁨과 충만함이, 제 삶의 평생에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말씀듣기] 새벽기도

– 군대 귀신의 강력함. 돼지 2천 마리를 끌고 익사시켰다. 예수님은 말 한마디로 어둠의 영을 물리치시는 메시아이다.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 중 하나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하고 어두운 영을 멸망시키기 위함이다. 우주적 관점에서의 구원. 예수님은 나 개인의 구원 뿐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자신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 이 일을 본 거라사 백성들은 두려워한다. 2천 마리 돼지떼가 죽었다. 조금 더 있으면 우리 마을 재산이 다 거덜나겠다. 그들은 예수님이 떠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 영혼의 온전케 됨과 돼지 2천마리 중 무엇이 중요한가? 한 20억원 정도. 내 무언가를 손해보며 저 사람을 회복시키는 데 주저하지는 않나? 씨뿌리는 자의 비유, 기초를 이루는 자의 비유. 돌밭처럼,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환난과 고난이 반드시 닥친다. 그리고 세상의 유혹과 염려로부터 신앙을 지키지 못해서 떠나는 자들이 정말 많다. 예수 믿기 너무 쉬워지는 시대. 그러나 성도의 믿음과 예수를 믿으려 하는 걸음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우리의 염려가 커졌기 때문에. 우리의 돼지떼, 소유가 아깝다. 주님을 따르는 데 걸림돌이 된다. 한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가 나를 찾아오셨다. 욕심이 있으면 말씀이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다. 내 이익과 연관된 일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 예수님은 우리가 온전케 되게 하기 위해서 당신의 생명, 마지막 호흡까지 우리에게 주셨다.

– 내일 일은 내일. 염려와 욕망이 우릴 가로막게 하지 말라. 기도하라. 주님이 지금까지 내 삶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을 해결해 주신 일이 몇 개인가. 주님이 내 마음을 겸손케 하셔서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게 한 기억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