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딛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 은혜가 나타났다. 조건, 자격, 공로에 상관없이 주시는. 정욕과 부패를 떠나 예수를 닮은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할 뿐 아니라, 소망과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남을 기다리게 하신다.
3장이 복음과 다른 점을 보자.
# 딛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주셨다(6). 성령이 하시는 일. 죄를 이기고, 죄로 인한 좌절을 이기고, 예수의 아름다움을 닮아갈 수 있게 한다. 그 성령님을 풍성하게 부어 주셨다. 오순절 사건. 물 붓듯이 부어주셨다. 양적 개념이 아니다. 성령님은 인격이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풍성히 부어주셨다는 말은, 성령님이 우리의 삶에 지속적이고 직접적으로 역사하는 시대가 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릴 양육하고 빚어낼 때, 그 일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이뤄진다. 내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세상은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지만, 복음과 기독교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구원을 경험하기 시작하면, 악한 본성에서 벗어날 힘을 주시고, 자라갈 수 있게 하시고, 완성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역사하는 시대이다.
– 성령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진다. 목마른 자들은… 성령을 가리킴이라 … 아직 임하지 아니하니라(요). 예수의 사건 이후, 예수님의 공로에 의거해서 우리에게 성령이 주어진다. 이전에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만.
– 성령이 하시는 일. 우리에게 구원을 적용시킨다. 영광스러운 구원의 사건을 나 개인의 사건이 되도록 적용시킨다. 나의 고백, 나의 경험이 되게 한다. 어떤 방식으로? (요16)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보혜사.. 아직 감당하지 못한다.. 진리의 성령..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알린다. 사람들은 죄를 인정하지 않고 죄를 믿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인정하지 않는다. 저 사람보단 낫지. 하나님의 심판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눈이 열리고, 도덕과 윤리 안에 있는 외식, 거짓, 자기중심성이 보이고 인정된다. 내가 하나님의 의에 얼마나 못 미치는지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에 얼마나 모자라는지 알게 된다. 내 안의 무수한 악함과 추함을 안다.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존재. 탄식하고 아파한다.
그때 성령이 중생의 씻음과 새로운 생명을 주시며 나타난다. 예수 사건을 적용시킨다. 용서받음. 구원 안으로 우릴 데려가신다.
그리고 우리를 양육하신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거룩한 데로 이끄신다.
교회의 잘못 두가지, 은혜로 받은 구원을 왜곡하고 잘못 가르치는 것. 구원받은 자들이 바른 선을 행하게 한다. 그게 열매고 표시이다. 오해하지 말라. 구원 전 선행은 누더기같아서 무수한 악과 외식이 함께 들어있다. 성령을 통해 바른 선을, 믿음으로, 은혜로 새로워짐으로, 행할 수 있다. 이웃의 삶과 복지와 유익을 내 삶보다 귀하게 누리도록. 은혜를 자기 노력으로 지탱하려 한다. 그러면 은혜가 없어진다. 성령은 영성이 뛰어난 소수를 위한 또다른 차별대우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가 절실하다.
또 하나. 교회가 뭔지 모른다. 나 하나만 잘 믿으면 되지 생각한다. 성도를 사귀고 성도와 교통하는 것. 핵심이다.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 나 하나만 열심히 노력? 그건 기독교가 아니다. 머리가 그리스도, 몸은 교회이다. 지체들과 함께 신앙생활하지 않으면 우린 이 길을 갈 수 없다. 좋은 설교 듣고, 착하고 바른 일 몇 가지 하는 것이 아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한 몸이 되는 독특한 만남으로 들어간다. 그의 슬픔, 그의 기쁨이 내 것이 된다.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간다. 사랑하기 때문에 종이 되고 섬기고 희생한다. 뭘 줘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개인주의가 가장 심한 시대. 예배당에서도 청중이고 관람객이 된다. 그건 예배가 아니다. 이웃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의 기쁨과 슬픔이 무엇인지 알고, 내 몸처럼 대하는 것. 성령은 성도와 성도 사이에도 있다. 개인 수준으로, 나 하나만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는 많은 실패를 겪고 있다.
– 성령이 우릴 데려가는 곳(7). 영생의 소망, 상속자. 더 윤리적인 삶. 분명 맞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우리의 끝은 하나님의 상속자로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성령의 역사가 아무리 크고 많아도, 우릴 기다리는 것은 이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상속자. 하나님의 모든 부요를 물려받는다. (엡)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 우리가 영광의 찬송이 된다. 약속의 성령. 기업의 보증.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한다. 성령이 인치시고 보증하신다. 격려하고 도우신다. 성령의 권세와 능력이 우리와 끝없이 함께 하신다. 신실하게 성도답게 사는 귀한 삶이 계속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