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은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모리 족속을 치면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춤합니다. 지형을 파악한다는 핑계로 정탐꾼을 먼저 보냅니다. 그리고는 그 땅이 좋은 땅인 것은 확인했지만, 그 곳에 사는 족속들의 강력함에 절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 이상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스스로 절망합니다.
이스라엘이 절망했던 이유는, 자기 자신들과 아모리 족속을 비교해 보고, 승산이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 비교를 위해 정탐꾼을 보낸 이유도 그들 자신의 능력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의 전쟁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능력과 상관 없이,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의 시작과 마지막을 주관하시고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행하는 싸움의 주체는 그들 자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싸우시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끝까지 돌보실 것입니다. 과거 애굽에서도 그랬고, 광야에서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누구보다 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임재하심을 생생하게, 직접적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시점에서도, 과거에도 계속 그랬지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일을 자기들에게 닥친 위기로, 자신들의 능력으로 해결해야 할 일로 여깁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이 겪은 고난을 보면,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모세의 행동 때문에 그들을 향한 바로의 분노가 점점 더 커지고,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은 완전히 구별되었습니다. 홍해 앞에서도, 이스라엘이 가만히 있었다면 뒤쫓아오는 애굽 군대에 몰살을 당할 상황이었습니다. 모세의 믿음과 순종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상황상 선택의 여지 없이 끌려다니는 모양입니다. 이 과정 중에 이스라엘 백성의 용기, 지혜, 결단 같은 요소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얼마나 신실하게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고, 사랑하며 돌보시는지 직접 보고 경험하게 됩니다.
광야에서는 출애굽 때처럼 급박한 일보단, 그들 안에서 불평과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그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었던 이스라엘은,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쏟아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분노도 일으키고, 재앙도 경험하게 되지만, 이 과정들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하심을 계속 경험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갑니다. 이렇게 악하고 조금만 찔러도 쉽게 배신하고 마는 자신들을, 하나님이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이끌어가신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여러 사건들이 지나가고, 이스라엘은 이제 다른 민족들을 접하고 전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으로 인해 몇 번의 승리를 얻고 난 다음, 아마도 이들의 마음 속에서는 이들의 승리의 결과를 자신들의 능력 때문으로 착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진 성능이 좋은 장비인 겁니다. 원래 하나님이 중심이고 그들이 따라가는 구도에서, 그들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을 돕는 구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압도적인 스펙을 자랑하는, 아낙 자손도 있는 아모리 족속 앞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빠진 자기들의 실제 모습과 능력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비벼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중심되지 않은, 하나님을 뺀 자신들이 이 땅에서 얼마나 약하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는지 너무나 잘 보이는 상황이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내리고 자기들이 스스로 중심이 되어 승리의 영광을 가져가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원망의 대상은 바로 자신들을 이곳까지 신실하게 인도해 온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신1:26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28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계속 범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매 사건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분명히 깨닫게 하셨고, 모든 사건의 결과가 이스라엘의 회개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늘 이끌어 낸 결론은, 그들이 아모리 족속 앞에서 이렇게 절망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아닌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미워하기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이런 절망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자신들의 죄로 인해 겪었던 고난들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재료로 변질됩니다. 그러면서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서 싸우실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러셨던 것처럼 아들을 안은 것같이 너희를 안으실 것이라고 말하는 모세의 말이 그들에게 닿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중심은 이미 그들 자신으로 장악되어 있고, 그 관점 속에서는 내가 저 세상을 이길 수 없는 것이 분명하고,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말은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인, 뜬구름을 잡는 말처럼 들립니다.
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런 상황으로 계속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계속적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점점 넓혀 주십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이시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생각해야 하고 어떤 것들을 버려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거대해 보이는 이 세상 앞에서도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십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은 저의 선택과 판단, 결단이 들어가게 하십니다. 제가 스스로 저를 하나님의 종의 자리로 잡아 끌어내리게 하시고, 눈 앞의 거대한 절망과 무기력함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시고, 결국 제가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도 제게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모세의 안타까운 외침을 기억하며 살아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