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08월 스1:1-11
– 이스라엘에겐 나라를 잃은 설움과 신앙적인 갈등과 고뇌가 있었다. 하나님이 우릴 버리셨나..?
– 70년. 나라가 회복되기 시작한다. 에스라, 느헤미야.
– 이스라엘의 감동. 하나님이 우릴 잊지 않으셨다. 우리를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하신다.
– 70년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유혹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길을 떠난다.
–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을 통해 순종하는 백성들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종하며 반응한다. 42360명.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60만명의 1/10도 안 되는 숫자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순종한다. 아브라함 한 명으로 시작되었었다.
– 세상은 유명한 사람만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날 기억한다.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에스라의 명단.

# 0109화 스6:13-18
– 하나님의 일을 하면 반드시 대적이 있다. 암초를 만나게 된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순적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 많은 고비와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 잘 깨어서 기도하라.
– 실제로 학개와 스가랴 때 대적들로 인해 백성들이 낙심하고 16년 동안 성전 짓는 것을 포기한다. 백성들은 삶의 방향을 잃는다.
–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다 낙심하면, 안한 것보다 못한 자리로 굴러떨어진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
–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함께 가려면. 마음을 다쳐도 다시 털고, 한 번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것처럼 하라. 하나님이 아신다. 절대 사람을 비난하지 말라.
– 이런저런 아픔과 어려움들을 받아내면서, 버텨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거두게 하실 줄 알라. 마음의 중심을 지키라. 그렇게 성전이 완공된다.
– 말씀이 이들의 우선순위를 바로잡고 마음을 치유한다. 내 마음을 새롭게 할 유일한 것, 말씀.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면 망하지 않는다.
– 성전이 무너진 후 70년만에 완공된다. 기초석을 놓은지 20년만에. 학개와 스가랴가 말씀을 백성을 일으킨지 4년만에.
– 성전 건축이 끝이 아니다. 성벽,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세워져야 한다.
– 유월절을 지킨다. 종 되었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됨의 영광을 회복한 날을 기념한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하나님의 첫번째 사람인 것을 기뻐한다. 잃어버렸던 첫 사랑, 어그러졌던 우선순위가 회복된다.

# 0110수 느2:17-3:12
– 140년이 지났다. 성벽은 오랫동안 허물어져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닿지 않았다. 무너져 있는 것이 익숙했고, 무너져 있는 것이 당연했다.
– 느헤미야가 와서 성벽을 직접 돌아본다.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한다. 성전과 성벽은 예루살렘 성,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한다.
– 백성들이 힘을 내어 선한 일을 한다. 지도자인 대제사장, 손이 생명인 세공사, 돈이 많은 무역상, 예루살렘을 실제로 다스리는 지도자들 등. 종을 보내거나 돈만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참여한다.
– 혼자 갈 수 없는 길이다. 함께 가는 길이다. 교회, 성도, 몸의 한 지체이다. 그가 없으면 나도 없다. 성벽 건축의 아름다움은 같이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와 종이, 부자와 평민이 함께. 함께 하기 위해 날 깨뜨리고 날 내려놓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남이 잘 하도록 돕고 격려하고 세워주는 것, 어떤 사람이 와도 그들과 함께 하는 것. 종이 될 준비를 하라. 나 하나 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같이, 함께, 더불어, 세겹줄.
– 세상의 복은 내가 좋은 것이지만, 교회는 같이, 함께 하는 것이다.
– 자기 일처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 성벽 건축에는 각자 집과 가까운 담당 구역을 맡은 것같다. 세상은 잘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교회는 자기 일처럼 하는 곳이다.
– 52일만에 성벽 건축이 끝났다. 바른 중심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소수, 돈 있는 사람 위주의 일이 아니다.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 교육관 건축. 같이 하는 것. 함께 기도하고 함께 지어지길.

# 0111목 느8:1-11
–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데 중추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세워진다.
– 사람은 말씀으로만 변화된다.
– 어느 새 성도들이 잘 갖춰진 교회 시스템 안에서 소비자가 되었다. 영적인 필요가 생기기 전에 공급이 일어난다.
– 성전을 짓는 데 백성들의 자발성이 있었다.
– 에스라는 율법에 능한 학자였다.
– 백성들이 말씀을 듣는 자세를 기억하라. 말씀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서서, 손을 들고, 엎드린다. 운다, 기쁘다. 하나님을 향한 표현.
– 소비하기만 하는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니다. 충성, 섬김, 빛, 소금 되는 사람들. 말씀이 넘치길, 기쁨이 솟아나길.
– 뭔가를 기쁨으로 감당할 마음이 생기는 힘이 생기길.

# 0112금 느9:25-38
– 회개하며 돌아오는 백성들이 나올 때 사람이 세워진다. 하나님의 집이 건강해진다. 모든 시대의 부흥은 회개와 함께 왔다. 회개 없이는 부흥도 없다. 우리의 죄를 깨닫고 토설하고 돌이키길.
– 회개는 도덕적, 윤리적 죄의 뉘우침이 아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얼마나 큰 은택을 베푸셨는지 알면, 나의 죄가 보인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는 이유.
– 높은 아버지(아브람) → 열방의 아버지(아브라함). 날 깨드려 남을 복되게 하는 삶으로 부르셨다.
– 광야. 하나님 이름에 걸맞는 사람으로 연단되는 곳. 하나님을 생생히 경험하는 곳.
– 목을 굳게 하여 교만했다. 그 많은 기사를 기억하지 않았다. 불평, 넘어짐, 좌절.
– 다양한 형태로 내 욕구를 채운다. 우상을 대하듯 하나님을 대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마침내 가나안으로 인도하신다. 이스라엘은 무수한 은혜를 누린다.
– 똑같은 모습. 악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은혜와 너무 대비된다. 계속 반복. 죄, 벌, 은혜의 반복.
–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는 것을 아는데 실제 삶에선 세상의 방법, 인간의 지혜를 붙든다. 세상에서 얻으면, 말씀이 불편해진다.
– 생존이 어려운 시대가 얼마 전이었다. 지금은 풍요하지만, 사람들은 훨씬 더 불안하다. 상대적 열등감, 소외감.
– 조상들과 자신들의 죄 토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약속. 언약대로 약속대로 살며 순교도 각오한 선배들이 있었다.
– 회개 후 또 실패. 넘어져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뼈 속 깊은 곳까지 타락했다. 죄에 대한 깊은 탄식. 재를 뒤집어쓰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난다.
– 순종하겠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겠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겠습니다.
– 하나님이 주신 쉼과 일의 조화. 영육의 건강. 안식일에 이웃을 방문하고 아픈자를 돌보고 섬긴다. 십일조도 마찬가지.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에 날 굴복시켜야 한다.
– 지금은 누구든지 돌이키면 돌아올 수 있는 큰 은혜의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