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204주일] 딛3:4-7, 1부예배

– 나. 죄 중에 태어남. 어리석고 불순종하는 자. 너무 쉽게 세상에 종노릇함. 악의. 나쁜 생각이 가득. 혐오스럽고 피차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고 미워함. 이것이 예수를 믿기 전 과거 모습.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났다.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시는지 보이시며 우릴 구원하셨다.

– 구원의 근거. 우리에게 있지 않다. 나의 의로운 행위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 같은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운 옷을 입었을 뿐이다. 하나님의 기준에 우리가 이르지 못한다. 스스로 구원에 이를 자는 아무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따라 우리를 구원하셨다.

– 우리는 예수가 이룬 행위를 믿고 의지함으로 구원에 들어간다.

– 은혜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치지 않나..? 뭔가를 계속 해야 은혜가 유지된다고 믿는다. 그게 아니다.

– 일하는 자는 그 삯을 은혜가 아닌 보수로 여긴다.

–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 그 사랑 때문에.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성품이 우릴 건져내고 긍휼히 여기셨다. 내가 죽을때까지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 은혜, 사랑.

– 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것도 불가능한데, 하나님의 필요는 당연히 채울 수 없다. 이 관점은 어리석은 길이다.

– 구원이 우리 삶에 적용될 때, 어떤 방식으로 되는가? (5)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성령의 역할. 성령의 도우심과 충만함을 누려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죄인.

– 중생의 씻음 = 성령의 새롭게 하심. 둘이 하나.

– 나의 망가진 부분을 고쳐주는 구원이 아니다. 중생의 씻음은 완전한 새로움을 의미한다. 전적으로 새로워진다. 새 피조물, 새 창조물이 된다. 완전한 새로운 피조물. 이전과 구별되는. 다시 태어남. 중요한 특징: 모든 형태의 죄가 씻어졌다. 원죄. 죄에 대한 책임과 습관들, 모든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긍휼로 씻겨졌다. 다시는 날 죄로 끌고갈 존재가 없다.

– 성령의 새롭게 하심. 죄의 습관이 남아있다. 나를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한다.

– 옛 자아, 옛 사람이 조금씩 빛을 잃어가고, 하나님이 나의 새 사람을 충만하게 다스리기 시작하면 나의 삶과 가치관이 바뀌기 시작한다.

– 마음을 새롭게 하다. 가치와 관점을 지배한다.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눈.

– 돈, 학벌, 세상을 보는 눈이 안 바뀐다면.. 나는 정말 예수 닏는 결과로 가치가 변화되었는가? 생각, 인격의 변화로 삶이 변화되었는가? 정신적 분열.

– 창조의 목적에 따라 회복이 일어나야 한다. 자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의탁해보라. 내 손때가 묻을 수록 오염된다. 하나님께 의탁하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 새 영. 새 마음.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신앙의 외적 고백. 세례. 참된 신앙의 시작. 

–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3:7 개역개정판)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하나님 앞에서 옳다 하심을 얻는다. 우린 불량품인데, 은혜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내가 안 되는 것을 아신다. 하나님이 우릴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신다.

– 뻔뻔스러운 담대함. 무자격한 나. 행한 어떤 공로에 근거하지 않고, 은혜로 우릴 의롭다 하셨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릴 자녀이자 상속자로 여기신다. 내가 죄를 지어도, 죄를 지은 ‘아들’이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들어가서 아버지 하고 불러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내 삶에 적용된다. 100점짜리 아들, 20점짜리 아들이 있지 않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 풍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