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212월] 막2:1-12

# 막2: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 항상 예수님에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그들에겐 예수님이 병을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쫓아내는 권능이 있는 선지자였을 겁니다. 그들은 그 혜택을 받고 싶어했고, 그로 인해 좀더 편한 삶,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염려와 고난 없이 사는 삶을 예수님으로부터 얻고 싶었습니다. 꼭 예수가 아니었어도 됩니다. 나에게 평안을 줄 수 있다면, 누구든 내 삶의 주인이 되어도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지금 이스라엘이 지난 400년 동안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세상의 안정과 평안에 빠지지 못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이 세상의 풍요를 누리면,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테니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때에도, 이스라엘은 큰 고난 중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본모습(?)을 알고 바로 돌아섰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원하는 이들의 기대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대신 이들이 전혀 필요로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것을 주셔야 합니다. 수요가 없는 공급입니다. 그 시대에도, 지금도 동일합니다.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충분한 이유입니다.

# 막2: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 예수님은 예수님께 오는 자들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냥 군중 속에서 혜택만 누리기 위해 숨어있는 자들보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거절당하고, 창피당할 것을 각오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밝히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주님께 가는 길이 막혀서 어쩔 수 없다 하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주님께 닿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 길이 위험하고,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해도 말입니다. 제 삶은 주님을 찾고 주님께 다가가는 여정입니다. 쉽고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고, 창피를 당할 수 있고, 실패가 모두에게 드러날 수 있고, 무시당하고, 외롭고, 고립되고, 막막하고, 괴로운 길입니다.

– 그 길을 뚫고 온 자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네 죄사함을 받았다.” 그는 그를 평생 짓누르던 병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병을 고쳐 주시기만 해도 그는 예수님께 평생 감사하고 고마워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병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의 죄에 대해 이약하십니다. 어쩌면 그는 그의 병의 원인이 그의 죄가 너무 크고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몸도 마음도 짓눌리며 살아왔을지 모릅니다. 그 짓눌린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에게는, 그의 병이 나은 것도 기쁜 일이지만, 병을 낫게 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 선포하신,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에 확증을 얻었다는 것이 더 감격적인 일입니다. 그를 억누르던 무거운 죄가 사라졌습니다. 그를 얽매고 구속하던 모든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죄를 사하신 예수님이 앞에 계십니다.

– 예수님의 죄사함의 권세를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죄사함의 선포는 결코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만 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진 못합니다. 하나님이 말로만 죄를 없이 하실 수 있으셨다면, 구약의 그 긴 이스라엘의 역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담과 하와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는 죄의 역사였고, 그 죄로부터 사람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본문의 이 때에는 예수님이 무슨 이유로 저렇게 자신있게 죄사함을 선포하셨는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예수님이 말하신 죄사함의 권세는, 그냥 얻어진 마법 같은 신비한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 세상으로 강등되어 내려오시고, 한낱 피조물로 취급할 수도 있는 인간들에게, 조롱과 멸시와 고난과 죽음을, 가장 치욕적인 모습으로 당함으로서 얻는 권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선포하는 죄사함은 무겁습니다. 그 선포에는 인간의 모든 역사에서 저질렀던 수많은 범죄의 엄청난 무게와, 그 무거운 죄를 짊어지고 처참하게 죽게 되는 예수님의 희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무거운 우리의 모든 죄를 덮는 하나님의 사랑의 각오와 무게가 담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