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214수] 막3:1-19

# 막3: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 말씀이 왜곡됩니다.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도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으면 바리새인들의 생각처럼 될 겁니다. 심지어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죽이는 것도 말씀을 따르는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단입니다.

–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탄식하고 노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심각한 왜곡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두지 않고,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두고, 자기 자신을 위해 말씀을 받아들이고 적용합니다. 또, 그들은 말씀을, 자기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자신들이 왜곡시킨 말씀을 지키면 자기 편, 그 말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정죄의 대상이 됩니다. 제가 사람들을 나눠서 보는 기준도 이런 기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말씀 적용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고 선을 그어 저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용도로 말씀을 적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지켜야 할 말씀을 주신 이유에 대해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 막3: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느니라

– 예수님은 소문과 여론을 통해 지체들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놀라운 능력과 기적에 대한 소문과 소식이 아닌, 예수님을 통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 하십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은 그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며,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는 데 쓰여집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기대하는 모습대로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 가까워질수록 더 그럴 것입니다. 제가 할 일은, 저의 기대를 예수님을 통해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남이 말하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과 소식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 막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 예수님이 세우신 제자들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능력과 자질이 특출나서 세운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다만, 앞에서 나왔듯, 이들은 예수님이 부르실 때 즉시 모든 것을 놓고 예수님을 따랐던 자들이었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고,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버릴 수 있고, 그렇게 자신이 비워져 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에 항상 귀가 열려 있어서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전도할 때,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질 때, 의심하지 않고 순종함으로 이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마지못한 순종이 아닌,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이를 위해 제가 이 땅에서 붙잡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는 오늘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