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막4: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 예수님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일반적인 식사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문제 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한 결과가 이 장면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모인 무리도 얌전해지고, 예수님도 집중하여 말씀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구도입니다. 이 아이디어를 누가 냈을까 궁금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생각하셨을지, 아니면 어부였던 제자들 중 한 명이 냈을지. 예수님의 첫 공동체는 매일 제자들의 섬김과 의견을 통해 잘 기능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막4: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 예수님의 해석이 바로 아래에 적혀 있지만 내일 또 묵상하기로 하고, 제 나름의 생각을 해 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고, 그의 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선포됩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은 그 말씀을 귀로 듣기는 하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묵상해볼 가치를 못 느낍니다. 그의 마음은 세상의 다른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말씀이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오늘과 내일 어떻게 더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집중하고, 말씀이 너무 관념적이고 실제로 와닿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들었던 말씀은 곧 그의 마음에서 사라집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 얕은 돌밭을 가진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줄 알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눈 앞에 닥친 고난과 환난으로 인해 고통을 당해서 조금이라도 불편해지고 아프기 시작하면, 그 말씀의 생각들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불편함을 빨리 해소해야 하고, 아프지 않게 하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게 됩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중 그럴듯한 것에 바로 빠져버립니다.
– 가시떨기가 자란 마음은, 아마 말씀에 좀 익숙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의 자람이 새싹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라는 상태이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거슬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경험도 가끔 해 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도 경험해 봅니다. 삶을 살다가 찾아오는 고난과 환난이, 하나님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믿음이 어느 정도 있고 싸울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자들에게, 사탄은 강하게 굴지 않습니다. 다만 가시떨기가 그 자리에 있게 하고, 저의 마음이 그것을 허용합니다. 긴 시간 동안 한결같지 않고 흔들리는 마음은, 저를 가시에 다가갈 수 없게 하고, 멈추게 하고, 말씀을 통한 믿음을 더이상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그 자리에 서 있고, 안주하고, 염려되는 부분을 뚫고 나갈 힘을 잃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가 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움직이질 못합니다.
– 좋은 땅은 말씀이 심겨져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는 충분한 흙이 있습니다. 뿌리가 없는 식물에게는 햇빛이 환난과 고난으로만 작용하겠지만, 뿌리가 깊이 박힌 식물에게 햇빛은 그를 성장시켜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좋은 땅은 가시떨기가 생장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제가 자라는 것을 막을 정도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말씀이 자라갈수록 하나님을 신뢰하고 더 깊이 믿게 됩니다. 가시떨기들이 제가 염려하던 것보다 훨씬 의미없는 것임을 하나씩 깨달으면서, 더 자라갑니다. 그렇게 자라다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수십 배, 백 배의 열매가 달립니다. 제 삶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맺게 하실 열매가 정말, 너무 기대됩니다.
– 이 네 단계의 마음밭 비유를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변화시키신다는 의미로도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말씀이 중요하지 않고 들리지 않다가, 말씀을 조금씩 알아가다가, 말씀이 제 삶의 중심이 되고, 제가 말씀을 적용하는 삶이 아닌, 말씀이 저를 이끄는 삶이 될 것입니다. 저의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 삶은 수동적인 삶이 아닙니다.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결단해야 겨우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삶입니다. 익숙해질 수 있는 패턴도 없고, 방심하면 바로 무너지고 돌아서는, 정말 거센 물살을 있는 힘을 다해 거슬러 올라가는 삶입니다. 말씀을 따르는 삶은, 그래서 절대 수동적인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매일 이게 맞는지 계속 되물어야 하는 가장 치열한 삶입니다. 주님, 이런 삶을 소망합니다. 이렇게 살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주님이 주신 열매를 맺는 경험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 막4:10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 사람들이 떠나고,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함께 한 사람들이 남아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외인에 대한 구분을 명확히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비유로 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미 구원의 길에서 벗어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거리낌없이 성령을 모독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은 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이미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제가 판단하고 결론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되,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영혼들을 잘 분별하게 하셔서, 주님이 주신 때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