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막5: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라 하고, 갈릴리에서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들의 믿음이나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아직 거라사 사람들과 같은 직접적인 손해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예수님이 그들에게 큰 이익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공짜로 병을 낫게 하는 보험으로, 나라를 독립시키고 부강하게 하여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살게 해 줄 것 같은 지도자로, 내 앞에 서서 전진하며 나의 모든 어려운 일을 먼저 처리해 줄 해결사 등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라사 지방에서의 일처럼, 그들의 우선순위와 예수님의 우선순위는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일과, 예수님이 생각하는 중요한 일의 순서들도 완전히 다르고요. 주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기도로 살펴 보고, 그것을 저의 우선순위로 삼아야 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정말 그 순서에 전심으로 동의하고 그것을 위해 실제로 살아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하며, 성령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 회당장 야이로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 엎드립니다. 물론 그에게는 어린 딸을 구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그가 어린 딸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분을 예수님으로 정하고 주님께 엎드려 딸의 목숨을 완전히 맡긴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닙니다. 나의 딸을 정말 사랑해야 하고, 내가 정말 딸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지나, (그 사이에 여러 방법을 찾아봤겠지만) 정말 마지막 소망은 예수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모든 체면을 다 버리고, 정말 절실하고 또 절실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엎드려 매달립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회당장이라는 자리로 올 때까지 그가 배우고 경험하고 지켜 왔던 모든 스스로의 가치관과 기준보다, 딸의 생명이 더 소중하고, 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가 쌓아온 모든 것을 부정당해도 된다는 각오입니다. 옛날에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줄 알았는데, 저의 가치관과 기준, 아집과 고집을 깨는 것이, 설령 자녀의 생명을 앞에 두고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 앞에서 고민하며 돌아갔던 부자 청년처럼, 저는 어떤 큰 일이 생겨도 제 기준을 깨지 않습니다. 올해가 난생 처음으로 그 기준을 깨 부수는 시작점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이 제게 주시고 맡기신 한 영혼을 위해서, 제가 평생 동안 공들여 쌓고 다듬어왔던 저의 모든 관점과 기준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이들을 위해서 주님 앞에 서는 제가 되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제가 앞으로 영혼들을 위해 수없이 기도해야 할 내용입니다.
# 막5: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 야이로가 예수님께 굉장히 적극적으로 다가갔다면, 이 여인은 야이로와 같은 간절함을 가졌지만, 굉장히 소극적으로, 몰래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고도 그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병의 고통은 무서운 것입니다. 지금 느껴지는 고통을 잊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고, 항상 의식하고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잠깐의 병과 통증도 무서운 것인데, 이 여인은 12년 동안을 병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부정한 자로서 사람들과 가까이 살지 못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피폐해진 상태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이 여인은 그의 부끄러운 모습 때문인지, 혹은 그의 성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의 옷자락을 몰래 만지기로 결정하고 실행합니다.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합니다. 이게 얼마나 단순한 생각인지요. 상식적이지도 않고, 야이로처럼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직접 말하는 것도 아니며, 또 그 방법도 아무런 근거가 없이 자기가 스스로 생각해 내고 스스로 확신을 한 겁니다. 체계도 규칙도 근거도 없는 이런 시도를, 이전에도 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얼마나 많이 해 왔고, 실패하고, 또 실망하기를 반복해 왔을까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변의 상황과 말에 얼마나 많이 휘둘렸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평생을 실패했지만, 여인은 예수님을 보고 다시 한 번 소망을 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병을 치유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다시 나아갑니다. 많은 실패의 경험 때문인지, 부정한 몸이라 부끄러워서인지 몰래 시도하지만, 그래도 실행합니다. 이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소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그 길었던 여인의 괴로움과 고민과 부끄러움이 단숨에 끝나게 됩니다. 돈도 필요하지 않았고, 괴로운 방법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다가갔을 뿐입니다.
– 그가 예수님만 일편단심으로 바랬던 것도 아닙니다. 여인은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을 믿고 그에게 희망을 걸고 그의 모든 재산을 사용했고, 수많은 실패를 겪고도 또 계속 시도했습니다. 결과를 보면 모두 헛된 시도였고요. 예수님은 그런 부분을 짚지 않으시고, 책망하지도 않으십니다. 왜 나 말고 다른 것을 의지했냐고 따지지도 않고, 그럴 줄 알았다고 당신의 옳음을 드러내지도 않으시고, 그의 과거의 잘못된 생각에 대해 교훈을 남기려 하지도 않으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은 여인의 병을 고치시며 그의 과거의 모든 삶, 즉 예수님 외에 다른 세상을 의지하고 좇았던 그의 모든 행동을 용서하십니다. 탕자를 용서한 아버지가 그랬듯 말이죠. 저는, 제가 그 여인이었다면, 예수님만 의지하지 못했던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 제가 예수님께 다가갈 가치가 없었다고 생각하며, 예수님께 가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이 자기의 병을 고쳐 주실 것이라는 믿음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했던 그 모든 과거의 삶과,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고 나서도 주님 앞에 범죄할 자신의 죄된 존재 자체를,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제게 필요한 믿음입니다. 단순하게, 염치 없이, 파렴치하게, 무책임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예수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예수님만이 제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 같은 의미로, 제가 돌보는 영혼들도 이런 자들이 될 겁니다. 예수님이 제게 그러신 것처럼, 제 마음을 계속 상처입혀도 저는 이들을 그저 계속 받아내고 보살피고 돌볼 것입니다. 배신하고, 배은망덕하게 행하고, 제게 악하게 행할 지라도, 제가 주님께 그랬을 때 주님이 저를 받아 주셨던 것처럼, 저도 이들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모든 능력은 제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저를 섬기시는 예수님의 저를 향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새벽기도]
– 거라사→ 갈릴리. 또 바닷가에서의 설교. 야이로.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실까.
– 12년 혈루증을 앓은 여인. 많은 의사들이 고칠 수 없다. 전 재산도 잃고 더 악화되었다. 12년 동안 성전에 못 들어갔을 것이다. 제사의 음식을 나누며 하나님의 자녀됨의 기쁨을 못 누렸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을 느꼈을 것이다. 또, 자녀가 없지 않았을까. 당시엔 큰 저주라고 여겼다.
– 많은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 소망과 희망을 둔다. 옷자락에 손을 대고, 예수님을 마주한다. 예수님은 말씀 하나로 모든 병을 고치신다. 생명의 통로.
–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병고침에 대한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여 낙심할 때가 많다. 의학이 발전한 시대. 예수님께 기도하지만,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된다. 그런데, 아직도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 있고, 기도로 낫는 경우들이 있다. 수술한 의사도 기도한다. 온전케 하시는 치유자 하나님. 그러나 이런 일들이 흔하지 않다. 기도로도 잘 안 되고, 의학도 안 먹히는 경우들이 더 많다.
– 이 여인의 경우, 완전히 직접적으로 적용하고 낙담하지 말라.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이 말씀은 예수를 대할 때 우리의 태도와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생과 완전한 관계의 회복. 우리가 받을 가장 큰 선물이다. 기도해도 낫지 않는다? 내 믿음이 없다고 자책하거나, 하나님을 의심하지도 말길.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그분의 방법대로 우리 인생을 책임지신다.
– 좋은 밭이 무엇인가? 어떻게 예수님을 대해야 하는가? 담대하게. 그래야 말씀이 깊이 뿌리내려서 열매를 맺는다. 30배, 60배, 100배. 실제론 두 배만 되어도 풍년인데. 100년치 열매를 맺는다? 영생의 열매의 가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는 영생의 열매가 주어진다. 온전한 영혼이 회복되고 완전한 모습으로. 죽음과 죄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님.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이상, 언제나 염려와 욕망과 유혹과 싸우게 된다. 한 번 통과한 시험도 다시 온다. 이 때, 예수만이 소망이다 하며 담대히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 생명을 흘려 보낸다. 오늘, 그 주님께 손을 뻗으며 기도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