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223금] 막6:1-13

#막6: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 예수님의 다음 행선지는 고향입니다. 어릴 때부터의 예수님을 알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권능에 대해 놀라면서도,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갈릴리에서 어떻게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와 비슷한 느낌일까요. 예수님이 살아온 모든 배경을 아는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신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환경 속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자란 예수가, 하루아침에 이런 지식과 능력을 ‘어떻게 얻었는지’ 의아해합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일화를 보면, 어느 정도 똑똑한 구석이 있고, 특이한 부분이 있는 아이처럼 보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여지는 예수의 모습은,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벗어났습니다. 이해되지 않고,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척합니다. 예수님의 성장을 보아 왔던 그들의 편견이, 예수님이 메시아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확신하게 합니다. 말씀으로 예언되었던 메시아가 이런 식으로 우리 곁에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저라도 그럴 겁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제가 확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그 근거가 빈약한 것이 많은지 압니다. 무엇보다 그것을 보는 주체인 제가 죄로 덮여 있고, 그런 저 스스로의 판단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온전하지 않은 자가 보는 확신이야말로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진리라고 여기고 확신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제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아닌 것에서 옵니다. 제 안에 계신, 제가 아닌, 성령님을 통해서요. 성령님이 제 마음을 움직이시고 살펴보게 하십니다. 이게 정말 맞는 것인지, 이게 정말 그러한 것인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정말 그러한가 살펴 보려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혈루병에 걸렸던 여인과 딸이 죽었던 회당장처럼,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도가 전혀 없습니다.

–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그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이런 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없이, 원래 가지고 있는 틀 안으로 예수님을 끌고 와서 자기 기준대로 예수님을 재단하고 해석하게 되면, 그는 예수님을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왜곡하고 변질시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여기서 자랐던 예수가 진짜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고침을 받았던 자들은 대부분 예수님과 직접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고, 질문을 주고받고, 예수님과 피부를 맞대었습니다. 예수님은 대규모 부흥집회를 열고, 몇 마디 말씀으로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병을 한꺼번에 고치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범위도, 예수님이 만난 사람 숫자도, 생각해보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고려했을 때, 굉장히 좁은 범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잘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그 모습이 곧 제가 따라가야 할 모습이 됩니다. 예수님은 불특정 다수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한 영혼을 만나는 사역을 하십니다. 그들의 필요를 묻고, 그들의 간절함에 믿음을 심어 주고, 그들이 생각하는 문제보다 더 큰 그들의 문제를 알려주시고, 해소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과 1:1로, 인격적인 만남을 한 자들은 주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생기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그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삽니다. 반면,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지 않고, 내가 필요한 예수님의 속성만 골라서 자기 안에 심어 보려 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결코 알 수가 없고, 예수님도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편견이 섞인 마음의 모양에 맞춰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아무 의미가 없고, 오히려 그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제 안에 얼마나 왜곡되고 뒤틀린 편견이 있는지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왜곡된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을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제 안에 들어오시기가 너무 어렵고, 그래서 예수님이 저를 통해 일하시기가 어려운 상황이 아닌지요. 주님을 제게 맞추지 말고, 저를 주님께 맞추는 오늘이 되길 기도합니다.

– 사람의 모양으로 사역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 이후 부활하시고 다시 하늘에 올라가실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복음을 전하는 역할은 예수님을 믿는 저희 성도들에게 넘어왔고, 지금은 전 세계에 예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의 사역의 방식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2천년 후의 저와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계십니다. 눈을 맞추고, 오랜 시간 대화하고, 제가 어떤 부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 주시고, 손을 잡고, 안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해 주십니다. 저와 예수님의 관계는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입니다. 다른 이가 알지 못하고, 다른 이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주님은 저희를 교회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불특정 다수와 비인격적인 교제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친밀한 주님과의 교제를 풍성히 누리는 상태에서, 혼자서는 금방 넘어지고 좌절하기 쉬운 연약함을, 교회 안에서 서로 품고 격려합니다. 동역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전하고, 섬기고, 실천하며, 저 혼자 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더 풍성한 예수님과의 관계를 함께 누립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하나됨을 경험하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저와 교제하며 누리고 계신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먼저 실천하시고 저희에게 명하셨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의 위임을 받은 저희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1:1로,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대화하고, 인격적인 나눔을 하면서요. 그 한 영혼 한 영혼을 만나는 일이 곧 선교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관계로 영혼들을 만나길 소망합니다.

# 막6: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 제자들이 아직 그렇게 성숙하지 않을 때였을 텐데, 예수님은 그들을 보내십니다. 잘 준비시키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는 곳에 필요한 것을 준비해 두십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탄하게만 진행될 거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받아들이는 곳도 있지만, 그들을 거부하여 발의 먼지를 털어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며, 예수님이 하셨던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료하는 일을 해 나갑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평화의 능력이 임합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에게 치유와 평화가 임합니다. 혈루병에 걸렸던 여인과 회당장이 예수님께 그들의 소망을 말했지만, 예수님은 그 소망을 들어주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정말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은 예수님께 반응하여 회개하고 완전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이 한 영혼, 한 영혼에게 다가감으로서 이 일이 이뤄집니다. 주님께서 제가 가는 곳에 미리 모든 필요를 준비시켜 주셨을 줄 믿습니다. 제가 만나게 하실 영혼이 있고, 그 영혼에게 성령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순간이 있길 소망합니다. 여러 고난과 아픔이 같이 따르고, 믿음이 흔들리고 시험을 받는 때도 많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안에서의 평안이 저희 안에서 떠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복음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입니다.

[새벽기도]
– 예수님의 주 사역지에서 약 50km 떨어진 곳. 나사렛. 인구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 동네 사람들이 서로 다 아는 관계. 길가에 떨어진 씨앗 같이.
–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다’. 이게 말이 되나? 예수님을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권능을 행하지 않으신다. 이상히 여긴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놀랐다는 표현과 같은 말. 메시아가 눈 앞에 서 있는데, 믿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놀라셨다.
– 예수님도 거절당하셨다. 그럴 수 있다. 낙심하지 말라. 때가 되면 주님을 믿는다. 나중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예루살렘 교회의 리더가 된다.
– 다른 마을로 가고, 제자들을 파송한다. 메시아의 사역, 권능을 주신다. 이 능력을 제자들이 행할 수 있다. 더디고, 연약하고, 변화되지 않을 것 같던 자들인데. 지금 내 삶에 예수의 능력이 흘러가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밀어내고 신뢰하지 않는가?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은혜를 흘려 보내며 동역자들을 도우며 살고 있는가? 제자의 삶, 주님의 능력이 흘러나가는 삶을 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