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막8: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 제자들이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가져왔어야 할 떡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예수님의 말을 듣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요. 빵 반죽에 누룩 가루를 넣으면 빵이 부풀어 오릅니다. 부피는 커지지만 실제로 그 부피만큼 무언가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속은 빈 공간으로 채워집니다. 겉으로는 크고 보기 좋아도, 속은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또, 누룩은 반죽을 부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속을 채우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율법을 지키면서 자존감을 채우고, 가득 채워진 것처럼 스스로 느끼고 행동합니다. 실제로는 속이 텅텅 비어 있는 상태이면서 말이죠. 바로 앞 구절에서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자신들의 견고한 이론과 논리와 행동으로 스스로를 꽉 채웠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고, 말씀을 행하지 않는 텅 비고 공허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고, 스스로에게 속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핍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죄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들어올 틈이 전혀 없습니다.
– 문제는, 저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제가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을 성실하고 바쁘게 행함으로 만족감과 성취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자들을 보며 은근한 우월감을 누릴 수도 있고, 혹시 그런 행동이 존경받는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면,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으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저의 헌신과 결단이 언제든지 바리새인들의 그것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제가 부족하고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매일 인정하고 저 자신을 매일 부정하는 것에 염증을 느껴서, 제가 꽤 괜찮은 자라고 포장하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온 부분이 많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것이 제 안에 항상 있는, 언제나 저를 부풀릴 수 있는 누룩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매일 기도하며, 저의 악함과 저의 실체에 대해 하나님 앞에 매일 고통스럽게 고백하는 시간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은 자기 비하가 아닙니다. 저의 죄성에 대한 객관적인 고백이며, 성령님이 저를 지배하고 이끌어달라는 요청입니다.
– 예수님은 당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두 번의 오병이어와 같은 일을 겪고도, 떡이 없는 것에 대해 염려하거나,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것을 걱정합니다. 제자들이 평소엔 먹을 것을 준비하는데, 이번만 실수로 떡을 준비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그런 것으로 책망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이야기하십니다. 제자들의 실수와 의도하지 않은 잘못에 대해서, 예수님은 한없이 관대하십니다. 또 그들에게 당장 먹을 것이 없는 문제는, 제자들에겐 큰 문제일 수 있지만, 예수님께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까지 반드시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계속 이 부분에 대한 경험을 해 가면서, 예수님의 관점과 방법을 배우고 깨달아갑니다. 언제나 눈 앞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살아갔던 저희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려주시고, 그 길을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그 길을 따라가는 최소한의 조건은 여기 제자들처럼, 자기 일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이번 일정들을 통해서, 그런 주님을 경험하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 막8: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 반복 학습이 이뤄집니다. 예수님은 맹인을 마을 밖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십니다. 그의 손을 직접 붙잡아 그를 데려가시고, 그를 만지시고,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십니다. 맹인은 가만히 있음으로 예수님께 순종합니다. 두 번에 걸쳐서 그와 대화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눈이 밝아집니다. 예수님은 그를 집으로 보내시고, 마을에 들어가지 않게 하십니다.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의 병 낫게 하심, 사람들에게 가능한 알리지 말라고 하신 것도 다른 사건들과 비교하여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맹인과 저를 인격적으로 만나셨듯, 예수님은 저를 통해 다른 영혼들도 인격적으로 만나실 것입니다. 한 번 만남이 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고, 교제하는 중에 복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저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길 기도합니다. 기존 관계 뿐 아니라, 새롭게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도, 예수님 안에서 인격적인 관계들이 맺어지고, 복음이 나눠지길 기도합니다. 반대로, 가장 가까운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멀어질 수 있는 저희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런 인격적인 관계가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그 안에서 풍성해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