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막9: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 아직 나머지 제자들은 산에 올라간 제자들의 경험을 듣고 공유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아직 혼란과 회의감, 확신 없음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계획에 대해 충격을 받았고, 마치 이세벨의 위협에 낙심했던 엘리야처럼, 예수님을 의심했던 세례 요한처럼,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간 모세처럼, 이들은 낙심해 있습니다.
– 이들의 마음 상태와 상관 없이, 여전히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한 아버지가 귀신 들린 아들을 고쳐 달라고 합니다. 이전 같았으면 고쳐 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았고, 실제로 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쫓아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그들은, 아무 능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아무런 확신이 없는 중에, 그들을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서기관들이 좋은 기회를 잡고, 그들과 변론하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최악의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그들의 믿음은 흔들리고, 원수들의 공격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예수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믿음이 없다고 하시고, 얼마나 제자들을 참아야 하는지 따지십니다.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라고 하신 말씀을 주목해 봅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며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끝나갑니다. 예수님은 이제야 본론을 이야기했는데, 여기서 제자들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이해하면서도 답답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모든 일이 선하게 이뤄질 것이 분명하지만, 이 순간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그런 감정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막9: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큰 기대를 가졌다가 이미 크게 실망한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간절한 믿음을 보십니다. ‘내 능력으로 고쳐줄게’가 아니라, ‘믿는 자’가 주체가 됩니다. 믿는 자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병을 고쳐주실 때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일하십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지금도, 그 이전에도 수천 번 좌절했지만, 예수님 앞에서 다시 믿음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나 없던 믿음이 말한다고 그냥 생길 리가 없습니다. ‘하실 수 있거든’의 마음이 그냥 없어질 리가 없습니다.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호통에 반응하여, 자신의 믿음이 없는 그 상태 그대로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주변 사람들, 특히 예수님을 너무 싫어하는 서기관들 앞에서 큰 소리로 믿음을 고백하면서요. 의심이 가득한 순간에도 의지적으로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곧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입니다. 의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내 상태를 내가 스스로 진단하고 예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 후 스스로 침잠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일이죠.
– 예수님이 귀신 들린 자를 주목하고, 그의 아버지와 이야기합니다. 대화합니다. 아들의 상태에 대해서, 아버지의 믿음에 대해 하나하나 묻고 답을 듣습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대화입니다. 제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었다면, 물어볼 필요가 없을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눈을 맞추고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안부를 묻는 방식으로,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 갑니다. 주님은 저와 친밀한 관계를 맺길 원하십니다. 일상에서 주님과 대화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투정부리고, 도전을 받는 매 순간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바로, 저는 주님과 그렇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중에, 회사 일을 하면서도, 출퇴근 중에, 그냥 길을 걸어가다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을 동석시킬 수도 있습니다. 주님과 하루종일 대화하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 막9: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 산에 올라가지 않았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병 고치는 상황을 함께 보고, 자신들의 능력 없음을 보면서, 흔들렸던 마음을 다시 추스릅니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지만, 지금까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해 오면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일관성과 말, 능력, 생활의 모든 부분을 보았을 때,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조용히,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무언가를 이루려던 그들의 기대는 꺾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대로 움직여주지 않으실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길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의 길을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지 들을 때가 왔습니다.
– 예수님은 기도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이 그랬지만, 이 부분은 완전히 제 상상으로만 채워질 내용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소통과 대화를 계속 이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계속 이어지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 세상과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저의 관점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저 스스로의 관심과 영향력이 가는 만큼만 볼 수 있고, 제가 직접 행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능력이 제한됩니다. 누구도 그것을 제한하지 않았지만, 저는 저의 한계를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이 예측하기 힘든 험한 세상에서, 제 몸 하나를 건사하는 것도 힘들어하며, 온갖 불안과 염려를 놓지 못하고 살게 됩니다. 하물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제 삶은 기도로 채워져야 합니다. 이 기도의 가장 큰 목적은, 보고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제 생각을 하나님의 그 생각으로 채워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는 눈, 하나님이 듣는 귀, 하나님이 품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당연히 안 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는 당연히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이 괜찮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의 모든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가려는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기 때문에, 고난과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예수님의 이름과 능력으로 귀신이 쫓겨나는 것이 너무 당연한 마음을 가지게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