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306수] 막9:30-37

# 막9:30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 예수님은 기적을 행한 곳에서 항상 벗어나십니다. 갈릴리로 돌아가는데,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려 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자들은 계속 혼란스럽고, 예수님의 죽음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가 바라고 이루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더 물어보기도 두렵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상태로 평소처럼 사람들이 몰려온다면, 더 힘들어지고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배려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각자에게 몰려온 당혹감과 의문들 앞에 서게 하시고, 그것을 똑바로 보고 맞닥뜨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 예수님의 길이 고난의 길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길도 그런 고난의 길임을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깨달았을 때, 저의 반응이 어땠는지 돌아봅니다. 먼저 근심하고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저의 삶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지금의 삶을 붙잡은 상태에서 예수님의 길을 따를 수 없는 것도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갈등을 안고 일상을 살다가, 그냥 잊어버리고,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않고 살아도 괜찮은 상태로 돌아옵니다. 그러다 다시 도전을 받고, 다시 무미건조해지는 패턴이 무수히 반복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바로 옆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실 생각이 없으십니다. 제자들은 주어진 시간 안에 예수님께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저도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예수님이 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기다리는 건 저의 신상에 대한 변화가 아닙니다. 제가 오지로 선교를 가야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지로 선교를 가도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 곁에서 절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 뿐인 길, 제가 살고 싶은 삶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오겠는지 물어보시고는, 기다리고 계십니다.

# 막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 제자들이 예수님과 떨어져서 이야기하는 것을 예수님이 듣고는, 집에 와서 그 일을 물어보십니다. 제자들이 혼란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이야기하다가, 예수님이 이 땅에서 나라를 새로 세우시면 기대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그들은 누가 더 큰지 쟁론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해 자신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지 비교하고, 얼마나 큰 기적들을 경험하고 행했는지 자랑하고, 예수님과 얼마나 친밀한지 따져 보고, 얼마나 참아 가며 궂은 일을 많이 해 왔는지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정도가 얼마나 큰지 설명합니다.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지 몇 번이나 되돌아보고, 작은 것까지 짜내서 그들 사이에 꺼내 둡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거대하고 크고 부유한 나라를 만드실 것이라 생각해서 어느 정도 여유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정말 그렇게 맥없이 죽으신다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몫이 생각보다 적거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본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을 하더라도, 최대한 건질 수 있는 것을 건져야 하니까요.

– 그 이야기를 어떻게 자신이 곧 죽을 것이란 예수님 앞에서 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예수님을 배신할지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들에게 더 큰 자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가장 큰 자는, 가장 큰 자가 되려면, 모든 사람의 끝에 있어야 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요. 제자들은 그런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랬을 테니까요. 모든 것을 알고, 가장 성숙한 자가, 스스로 제일 끝에 설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잘 알 테니까요. 또한 그런 자가 다른 이들을 돌볼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삶이 자신의 그것만큼 소중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정말 옳습니다.

– 예수님은 어떤 사람을 섬겨야 하는지도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고, 은혜를 받는다는 개념도 없고, 내가 섬겨도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한, 나도 잘 모르는 한 어린아이. 이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면, 그런 사람들을 영접하며 살면 됩니다. 예수님이 그런 삶을 사셨고, 제자들에게도 이런 보답과 조건이 없는 사랑과 섬김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당연히, 이것은 예수님이 절 보며 제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이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란해하고, 이 길이 맞는 것인지 괴로워하고, 어떻게 해야 나에게 이득인지 계산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정말 단순하게, 그러나 명확하게 알려 주십니다. 오해할 여지가 없습니다.

–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예시로 말씀하시는데, 어린아이를 안으시며 이야기하십니다. 그 아이는 남이 아닙니다. 단순히 예를 들기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한 영혼 한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관심을 가지시는지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그 영혼을 향합니다. 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일상을 이해하시고, 그를 배려하고, 그를 이해하고, 그의 마음을 들으십니다. 예수님이 그런 마음으로 병 고치는 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어린아이에게도, 예수님은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십니다. 무미건조한 일로서의 섬김이 아닙니다. 눈을 바라보고, 안아주고, 상대를 사랑하며 이뤄지는 섬김입니다. 제가 섬기려는 사람들과 대화해야 합니다. 그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모든 섬김의 시작이고 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