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707주일] 갈5:22-26 1부예배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 이 시대가 원하는 사람. 상대방을 통쾌하게 이기는 사람. 성경은 예수님을 닮은 온유함과 따뜻함을 닮으라 한다.
– 하나님의 온유. 구약에선? 시편 등에서 온유함이 많이 묘사된다. 신명기.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같이 하나님은 너희를 안아서 광야를 건넜다(신명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것 같이(시편). 목자가 양을 품는 것같이(이사야). 호렙 산에서 엘리야 앞에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다시 일꾼으로 세우셨다.
– 예수님. 많은 대적과 거스름을 앞에 두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주님께 와서 하나님의 온유함을 경험해야만 우리의 삶에 참된 쉼이 있다. 하나님을 알기 전까진 쉼이 없다(!!). 우린 주님 안에서만 참된 쉼을 누린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에 너무나 많은 것을 더해서,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눌림과 상함과 고통을 경험했다. 주님의 온유한 삶을 경험할 때, 참된 안식과 쉼을 경험한다.
지금 기독교. 사람이 많다. 숫자를 가지고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다. 주님은 온유함을 이야기하신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진 않다. 교회가 힘을 가졌을 때 세상은 가장 어두웠다. 교회는 온유하고 희생하고 종이 되고 섬기며 세상을 바꾼다(!!). 사마리아 여인. 그 곤고한 여인을 따뜻하게 받고, 세상의 관점으로 비판하지 않고 살 길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우린 얼마나 빠른 시대를 사는가. 사람들은 자기가 전문가인 것처럼 모든 것을 판단한다. 정상작인 결혼을 하지 않았을 여인. 당시 이혼의 특권은 남자에게 있었다. 여자들은 받아들이고 당해야 했다. 얼마나 흉을 봤을까. 예수님은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상관없이 겸손하게 대하는 온유함이 필요하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참 덕과 아름다움을 가르치셨다.
수로보니게 여인. 완전 이방인. 더 무시당했다. 딸이 귀신들렸다. 얼마나 많은 말을 듣고 살았을까. 근데 예수님,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주는 것이 마땅치 않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의 행간을 읽어낸다. 유대인들을 위해 행하시는 주님의 덕과 선행. 내가 예외가 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주님의 온유하심을 붙잡고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말을 쏟아낸다. 유대인들을 거처 이방인에게까지 구원이 임하는 것. 그것이 주님의 뜻이 아닙니까? 이 여인처럼 행간을 읽어내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실패한다. 생각하는대로 느끼는대로 살아가려 한다. 내 생각과 다를 때 하나님을 변함없이 인정하라. 절대 낙심하지 말라.
– 주님의 온유하심의 절정, 십자가. 상대의 비난을 못 듣고 못 지나가는 시대. 그런 말 좀 들어라(!!). 예수님도 들었다. 온갖 말을 듣는데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으신다. 변론, 변호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받고 당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럴 땐 그냥 당하는 거다. 주님을 묵상하고 생각하면서, 당하고, 세상에 선한 반응을 흘려보내야, 세상이 따뜻하게 바뀐다. 우리는 주님처럼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달려 죽도록 부름받았다(!!). 절대로 상대가 한 것처럼 되받아치지 말라.
– 예수님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은 영광과 성공을 기대한다. 누가 주님 오른쪽에 앉을까. 베드로는 미련을 가지고 대제사장의 뜰까지 따라갔다. 그 과정에서 베드로는 완전히 무너졌다. 예수님은 그를 정죄하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지 않는다. 그는 예수님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를 살려낸다. 세상은 실력이 없으면 도태된다 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아직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다. 베드로는 주님의 온유함을 만나 회복된다. 사도행전의 베드로는 다른 사람이다. 주님의 용서와 성령의 오심을 통해.
– 참을 만큼 참았다. 이제 되갚아야겠다? 세상처럼 살지 않는다. 어떻게든 사람을 살려 낸다.
– 하나님의 온유함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온유함과 관용을 이야기한다. 바울이 온유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바뀐다. 이 온유함은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성령의 열매이다. 모든 진실한 성도들은 온유를 열매로 맺게 된다.
–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다. 산상수훈의 세번째.
첫번째. 심령이 가난한 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성을 본다. 무자격함. 심령이 다 깨어져 있다. 가난함. 두번째. 애통하는 것이다. 내가 어쩜 이렇게 나쁜 마음으로 사람을 볼까. 그럴 때 온유함이 생긴다. 나의 추함을 보고, 많이 울고.. 이미 주님 안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나를 향한 비난을, 그럴 수 있다고 하며 인정하고 따뜻한 맘으로 받아낸다. 겸손한 마음으로. 귀를 열어서 듣는다.
온유한 자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온유, 겸손함. 이용만 당하고 다 빼앗길 것 같은데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한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 세상에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한다.